참도 거짓도 될 수 없는 명제

어느 마을에 이발사가 한 명 있다. 이 이발사는 스스로 면도하지 않는 사람들 모두를 면도해 준다고 말한다. 이 이발사는 자기 스스로 면도하는가?
이제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만일 이발사 스스로 면도를 한다면 자신의 주장과 일치하지 않으며, 그가 스스로 면도하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의 주장에 따라서 자신을 면도해 주어야 하는데 그것은 모순이다.

 

다른 예를 한 가지 더 생각해 보기로 하자.
어느 선원이 항해 중에 폭풍우를 만나 표류하다가 식인종이 사는 섬에 도착하였다. 이 마을에는 외부인이 나타나는 경우 하나의 명제를 말하게 하여, 이 명제가 참이면 불에 태워 죽이고, 거짓이면 물에 빠뜨려 죽인다고 한다.
이 선원이 살 수 있는 명제는 무엇인가?
이 선원은 "당신들은 나를 물에 빠뜨려 죽인다."라고 말함으로써 목숨을 건질 수 있다. 왜냐하면, 선원을 물에 빠뜨려 죽이려고 하는 순간에 이 명제는 참이 되고, 불에 태워 죽이려는 순간에 이 명제는 거짓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떤 명제가 참도 거짓도 될 수 없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수학에서 이와 같은 종류의 명제는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그렇게 하여도 현대 수학의 이론을 전개하거나 응용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일반적으로 현대집합론은 1895년 칸토어(Georg Cantor, 1845-1918)에 의하여 창조된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칸토어는 삼각함수열을 연구하다가 그 같은 이론에 대한 필요성에 따라 "집합을 두고 우리는 직관 또는 사고의 대상으로서 분명히 구분되는 것의 전체적 모임으로 이해하고자 한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정의하고 나면 모든 집합의 집합에 대한 생각에서 어려움이 생긴다. 칸토어가 정의한 집합에서 모임이라는 용어가 어려운 것이다. 모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이 모임을 명확하게 정의하기 힘들다. 따라서 이 용어는 정의하지 않기로 한다. 수학에는 이렇게 무정의 용어가 있다.

집합론에는 러셀의 역리 이외의 역리도 있다. 현대 수학에서 이러한 역리를 피할 수 있는 집합의 정의는 아직 없다.

이렇게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현대 수학의 각 분야에서 칸토어의 집합론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며 수학적 논리 전개의 기초가 되고 있다.

 

칸토어(Georg Cantor) 1845년 러시아에서 태어나 1856년 독일로 옮겨 Berlin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하였고 Hale대학에서 강의를 하였다. 칸토어는 삼각함수열에 대한 연구에 흥미가 있었으며 그 연구과정에서 집합론과 초월수에 대한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1874년에 그는 집합론과 무한이론에 관한 혁명적인 연구를 시작하였다. 이 연구로, 칸토어는 수학 연구의 완전히 새로운 분야를 창조하였다. 무한집합을 농도에 따라 분류하였으며, 두 집합 사이에 일대일 대응이 가능하면 같은 수의 원소를 갖는 것으로 간주하였으며 무한 집합에서도 셀 수 있는 가산집합과 셀 수 없는 비가산집합을 생각하였다.
     가산집합 : N ∼ Z ∼ Q, 즉, 자연수, 정수, 유리수의 집합은 모두 원소의 개수가 같다.

     비가산집합 : (0,1) ∼ R 즉, 0과 1사이의 실수의 집합과 실수 전체의 집합은 원소의 개수가 같다.

전혀 그렇지 않을 것 같지만 사실인다.
 


다음 사이트를 참고하세요

   러셀

http://user.chollian.net/~bypark/bertrand.html

http://my.dreamwiz.com/reality/data/philosophy_netizenpower_russell.htm

 

   칸토어

http://nobel.kyungnam.ac.kr/science_donga/cantor.htm

http://kronos.interpia98.net/~shinwch/mathman/cantor.html

 

수학자 및 수학사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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