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수학

Ⅰ. 서설

기원전 7,8세기쯤부터 당시의 문명국인 바빌로니아,이집트 등과 무역을 활발하게 하여

그리스인들은 이집트에서 기하학을, 바빌로니아에서 대수학(代數學)을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스의 탈레스나 피타고라스, 또 플라톤도 이집트에 유학하여 그 문화에 접하였다. 그리스는 이들 문화를 받아들여 새로운 문명의 한 시기를 형성하였다. 예술에도 과학에도 많은 성과를 보이고 있으나 특히 수학에서는 불멸의 업적을 남기고 있다

 

Ⅱ.그리스의 철학과 수학

그리스의 대표적인 철학자인 플라톤의 철학은 한 마디로 말해서 이데아설 이다.이는 감각으로 어떤 존재를 느끼는 것만으로는 확실한 지식이 못 된다는 생각이다. 여기서 완전한 삼각형,완전한 원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수 있는 현실 속에서가 아니라, 관념의 세계에서만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스의 철학이 이러하여 실제 생활에 응용필요로 발전한 이집트,바빌로니아의 수학과는 달리 현실의 요구와는 상관없이 논증수학이 싹트게 되었다.다시말해 어떻게라는 질문만으로 충분했던 고대오리엔트의 경험적 과정은 그리스에서는 왜라는 보다 과학적인 질문이 요구되게 되었다..

 

Ⅲ.그리스 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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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탈레스

  이오니아란 고대 그리스의 식민지였던 소아시아의 서안지방의 고대지명이다. 그리스 최초의 철학파인 이오니아 학파의 창시자는 탈레스(B.C. 640- 546)이다 .기하학을 그리스에 소개한 것도 탈레스이며 또한 그는 피라미드의 그림자를 측정하여 그 실제의 높이를 재어 아마시스 왕을 경탄시켰다고 한다. 탈레스는 그 본질에 있어서 추상적인 직선과 각의 기하학을 창설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이집트 사람들은 주로 실험적 성질을 갖는 면적과 입체의 기하학을 취급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탈레스가 발견한 정리로는 다음과 같다.

 

 (1) 두 직선이 만날 때 그  맞꼭지각은 같다.

 

 (2) 이등변삼각형의 밑각은 같다.

 

 (3) 두 개의 삼각형에 있어서 두 변의 길이와 그 끼인각이 같으면 두 삼각형은 합동 이다.

 

 (4) 두 개의 삼각형에 있어서 그 두 내각과 끼인 변의 길이가 각각 같으면 두 삼각형은 합       동이다.

 (5) 반원에 내접하는 각은 직각이다.

 

 (6)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2직각이다.

 

 (7) 두 개의 삼각형에 있어서 대응하는 변이 모두 평행 되게 놓여 있으면 두 삼각형은 서       로 닮음이다.      

  탈레스는 위의 정리들은 그 자체의 중요성보다 연역적체계에 의한 논리적 증명이 가치가있는 것이다.  엄밀한 증명도 붙였고 또한 이들을 실용적으로 응용한 제 1인자이었다고 한다. 예컨대 삼각형의 합동에 관한 정리를 이용하여 해상에 떠 있는 배의 위치를 측정하는 것 등이었다.

 

 2 피타고라스

탈레스의 학문을 이어받은 것은 피타고라스(B.C. 580 - 500 ? )이었다. 그는 사모스섬에서 출생하여 이집트에 유학했고 남부 이탈리아의 크로톤에 학교를 세웠으며 그 곳에서 이오니아 학파의 합리주의를 더욱 더 철저히 했고 우주의 조화, 합리성의 이상으로서의 수학을 목표로 하여 「만물은 수이다. 」라는 근본원리를 주장하였다. 수학이라는 말도 이 학파가 창시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우주의 근원을 이루는 법칙으로 그들이 배워야 할 것으로서 기하학, 산술, 천문학 및 음악을 들었다. 또한 그들은 비밀결사를 만들었으며 그들의 교재는 비법이었고 외부로의 누출이 금지되었다.  피타고라스와 피타고라스 학파의 독특한 방법은 기하학과 산수와의 연락을 꾀한 것이다. 즉 산수적 사항을 기하학 중에 유사한 형으로 포함되어 있고, 역으로 기하학적 사항은 산수 중에서 유사한 형으로 포함되어 있다.

이와 같이 피타고라스는 그의 정리와 연락해서 직각 삼각형의 변의 길이를 나타내는 정수를 발견하는 법칙을 연구했다.

       피타고라스의 학파들이 발견한 정리는 다음과 같다.

         (1) 직각 삼각형에 관한 피타고라스의 정리

         (2) 평행선의 이론으로부터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2 직각이라는 정리.

         (3) 무리수의 발견

          무리수의 존재는 눈으로 암시되는 어떠한 기하학적 도형에도 없다. 그것은 순수            한 추상적 사색에서가 아니면 발견할 수가 없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무리수를 말            할 수 없는 것의 상징으로 생각했다.

          .

 

          (4) 삼각수와 사각수의 관계 발견

           삼각수 : 1 3 6 10 15 21

           사각수 : 1 4 9 16 25 36 (삼각수의 두 인접수의 합은 사각수이다.)

          (5)정다면체가 5 종류만이라는 발견(정4, 6, 8, 12, 20면체)

          

 

 3  소피스트 일파(3대작도불능문제)

     기원전 480년에 살라미스만의 대 해전에서 페르시아 군을 격파하고 에게해에서 페니키  아 사람을 추방하고부터 그리스의 상권은 날이 갈수록 융성하게 되었다. 아테네는 큰 세력을 얻었고 학자들이 몰려드는 중심지가 되었다. 피타고라스 학파도 이곳에 모였고, 아낙사고라스도 아테네에 이오니아 철학을 이식했다. 이 아테네의 시민들 중 일상의 일은 노예에게 맡기고 소피스트 즉, 智者라고 불리어진 직업적인 가정교사로 이루어진 무리가 출현했었다. 소피아는 智를 뜻하므로 소피스트란 智者의 의미나 이들이 변론의 術을 주로 하게 되었으므로 후에는 궤변가라고 불리어졌다.

  원에 대한 기하학은 피타고라스 학파에서 제외된 것이었는데 이제야 그 시초가 열렸다.

 (1) 3대작도 불능문제

소피스트들의 연구에서는 다음의 유명한 세 문제가 그 초점이 되었는데 어느 것이나 모두 눈금 없는 자와 컴파스만을 사용해서 작도하는 문제였다. 중요한 점은 이들 도구를 가지고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지만 이 세가지 문제를 풀기위한 왕성한 연구가 결국  그리스 기하학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다.

 

  a 임의의 각 또는 원호를 3등분할 것.

  b 정육면체의 배적문제. 즉, 주어진 정육면체의 2배의 체적을 가진 정육면체를 만           드는 것.

   위의 두 문제의 초등기하작도가 불가능하다는 증명은 1837년에 Wantzel P.L. (France,      1814 - 1848)에 의하여 이루어졌으니 소피스트들로부터 2000년 이상이 지나서 문제가 해     결된 것이다.

  c 員積문제. 즉, 주어진 원의 면적과 똑같은 면적을 가진 정사각형.

    이 문제의 초등기하작도가 불가능하다는 증명은 1882년에 Lindemann F. (Deutschland,      1852-1938)의 「 π가 초월수라는 연구 」에 의하여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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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플라톤 학파

 

소크라테스(B.C. 469-399)의 제자인 플라톤은 수학을 경시한 소크라테스의 사후에 데오도로스로부터 기하학을 배웠고 이탈리아에서는 피타고라스 학파와 교제하였다. B.C. 389년에 플라톤은 아테네에 학교(Academy)를 열어서 평생교육과 저작에 종사하였다. 이 학교의 현관에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출입을금함」이라고 대서한 일화는 유명하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기하학이란 지금의 그것보다 훨씬 폭넓게 기하학적 정신으로 보아야한다.  스승 소크라테스와는 반대로 플라톤은 정신 개발상 수학의 가치를 크게 인정하였다. 플라톤은 전문적인 수학자는 아니었다. 따라서 그에게는 수학에 대한 독창적인 연구는 거의 없지만, 수학의 연구를 고무하고 기하학에 사용되는 방법의 개선을 시사했다. 그는 이제까지 기하학자들이 본능적으로 사용한 논리를 의식적으로 불안이 없는 방법으로 바꾸었다. 그와 더불어 용의 주도한 정의와 공준, 공리의 사상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플라톤과 기하학과의 관계를 말해 주는 유명한 배적문제가있다. 연구결과 기계에의해 해결하였지만 플라톤은 만족하지 않았다.  

 

5 알렉산드리아 학파

 (1)유클리드

  유클리드(B.C. 330 - 257?)의 생애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알려져 있지 않았으나 그의

저서인(원론(Elements),스토이케이아 )13권을 저술한 것은 그가 35세 - 40세 때인 것으로 추측된다. 그 내용은 대체로 플라톤 학파의 테아이테토스나 에우독소스 및 그 이외의 학자들이 얻은 결과에 자기 자신이 얻은 결과들을 병합하여 집대성한 것이고 이것을 플라톤 학파의 교리에 따라서 공리, 공준, 정의, 정리의 형으로 배열하고 정리에는 엄밀한 증명을 붙인 것이다.

공리와 공준의 의미에 대한 학설의대립이 있었으나 현대수학 에서는 같은 의미로 보고 있다. 공리,공준이란 처음에 증명없이 인정해야할 어떤 유한개의 명제를 말한다.

 

  a. 유클리드의 공준                                                                 

 

     (a). 한 점으로부터 다른 한점으로 직선을 그을 수 있다.

     (b). 선분은 얼마든지 연장할 수 있다.

     (c). 주어진 점을 중심으로 하고 주어진 반지름을 갖는 원을 그릴 수 있다.

     (d). 직각은 서로 같다.

     (e) 한 직선이 다른 두 직선과 맞나서 어느 한 쪽에서의 두 내각의 합이 두 직각보다           작은 두 내각을 이루면, 그들 두 직선을 한없이 연장  시킬 때 그들의 내각이 있           는 쪽에서 그들(두 직선)이 반드시 만난다.

 b 공리

     (a) 동일한 것과 같은 것끼리는 서로 같다.

     (b)같은 것에서 같은 것을 더하면 그 결과는 또한 같다.

     (c)같은 것에서 같은 것을 빼면 나머지도 또한 같다.

     (d)완전히 겹칠수 있는 것은 서로 같다.

     (e)전체는 부분보다 크다.

 

 지식의 어떤 부분을 둘러보아도 고대의 저술가 가운데 초등기하학에 있어서 유클리드만큼 근대 교육에 권위 있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은 유클리드에게 "「원본(Elements)」에 의하지 않고 기하학을 배울 지름길은 없을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유클리드는 즉석에서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유클리드는 기하학을 배워서 무엇에 쓰느냐고 묻는 청년한테 "돈 3 펜스를 갖다 주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2) 아르키메데스

 아르키메데스(B.C. 287- 212)는 당시의 수학자인 동시에 물리학자이었고 그 광범한 여러 가지 실용문제에 응용했다. 특히 대중탕에서 순금의 비중에 관한 발견을 이루고 나체로 시가를 구보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아르키메데스는 주로 원과 구에 대한 결과를 얻었는데 다음과 같다.

 a (구의 표면적 )=(대원의 면적의 4배)

 

 b (구의 체적) = (반경의 3 자승의 4π/3 배)

 

 c 30/71 < π< 3/7 : 이 결과는 정다각형의 변의 수를 점차 증가시켜감으로써 얻어진 것       이라고 한다.

 

 d 구의 체적 및 표면적은 각각 구에 외접하는 원기둥의 체적 및 표면적의 2/3이다.

    

 플라톤이 그의 강당의 입구에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말라”고 써 붙였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유클리드도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기하학원본》은 역사상 처음으로 수학을 논리적으로 정리하여 체계화한 것으로서 유럽에서는 19세기 말경까지 교과서로 쓰이고 있었다. 이 책은 공리에서 출발하여 차례차례로 정리(定理)를 증명하여 체계화하는 오늘날의 수학의 형식에 가까운 것을 이미 BC 3세기경에 보여주었다. 내용은 피타고라스를 비롯하여 많은 선인들의 업적이 대종을 이루고 있는데 제1권에서 제4권까지가 평면기하학(平面幾何學), 제5권이 비례론(比例論), 제6권이 닮은꼴의 기하학, 제7권에서 제9권이 산술(算術), 제10권이 무리수(無理數), 제11권에서 제13권이 입체기하학(立體幾何學)이고, 끝으로 정다면체(正多面體)에 관한 문제가 설명되어 있다. 전체 13권 중 8권이 기하학인데, 당시의 수학 전반에 걸쳐 있다. 이 체계에는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여러 가지 결점도 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수학에 끼친 영향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아르키메데스의 포물선 구적(抛物線求積)은 포물선(곡선)과 그 현(직선)으로 둘러싸인 도형의 넓이를 구하는 문제인데, 그리스 특유의 엄밀한 논법으로써, 오늘의 적분학의 기초에 관련되는 생각을 보이고 있다. 그의 원기둥과 구(球)의 문제도 훌륭한 업적이며, 역학(力學)에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6  후기 알레산드리아

 

  (1) 아폴로니오스는 《원뿔곡선론》(8권)에서 원뿔의 절단 자취로서의 원뿔곡선을 논하고 있다. ( 포물선, 타원, 쌍곡선 등의 용어 최초로 사용함 ), 이 방면은 기하학원본에는 빠져 있는 분야로서 후세의 해석기하학(解析幾何學)에서 2차곡선론이라고 불리는 것의 대부분을, 해석기하학의 방법을 방불케 하는 생각을 써서 집대성하였다.

 (2) 디오판토스의 대수 방면의 연구도 역시 이론적인 면이 뚜렷하였다. 수의이론(정수론)과 방정식(주로 1차,2차 방정식)을 연구하였다.

 (3) 헤론은 삼각형의 넓이에 관한 헤론의 공식으로 유명하다

 

Ⅳ. 결어

그리스수학은 탈레스에의해 논증수학의 기초가 확립된후 유클리드의 (기하학원본) ,아르키메데스의 많은 연구업적, 아폴로니오스의 원뿔곡선론, 디오판토스의수론 등 수학에서 많은 업적을 남기었다.  이론수학 으로 실용수학인 고대오리엔트와 다른점이 그리스수학의 업적이 현대수학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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